[온라인 & SNS 위기관리 Q&A] 온라인 커뮤니티 토론방의 전체적 역사는 어떻게 되나요?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 토론방의 역사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토론의 형태, 특히 정치 주제 토론의 변화상을 살펴보았습니다. 모 언론사 인터뷰 요청에 따라 준비한 원고입니다. 해당 내용은 객관적 사실 외 일부 주관적 견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온라인 위기관리 시 온라인 커뮤니티와 여론의 특징을 이해하는데 참고해 보시길 희망합니다.

 

Q : 온라인 커뮤니티 토론방의 전체적 역사는 어떻게 되나요? 흐름과 변화에 대한 코멘트 부탁합니다.

A : 우리나라 온라인 토론방 커뮤니티의 역사는 크게 ① BBS – PC 통신 시대, ② 포털-독립 커뮤니티 시대, 그리고 ③ SNS 시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BBS – PC 통신 시대’는 전화선과 모뎀을 연결해 게시판 형태의 커뮤니티 툴을 활용했던 시기입니다. 이때 등장한 사설 BBS는 우리나라 온라인 커뮤니티의 시작입니다. 이후 토론방 커뮤니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80년 중후반 PC 통신 시절 토론게시판과 동호회 게시판을 통해서 입니다. 당시 하이텔과 천리안이 대중화 되면서 많은 사람들과의 온라인 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지금의 정모, 번개, 공구, 채팅, 쪽지, 아이디, 님 등의 단어도 이 당시에 등장했었습니다.

2000년 초반 텍스트 기반 PC 통신이 몰락하면서 ‘포털-독립 커뮤니티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네이버, 다음 같은 포털 중심 카페와 다음 아고라가 대중화되었고 우리나라 독립 인터넷 커뮤니티의 모체이자 산파 역할을 했던 디시인사이드가 탄생했던 시기입니다. 또한 딴지일보와 서프라이즈 등 정치 논객 중심의 커뮤니티가 등장했고 일베저장소, 오늘의 유머, SLR 클럽, 클리앙, 뽐뿌, 보배드림, MLB PARK 등 아마추어적 동호회 개념이 아닌 전문화되고 대형화된 커뮤니티가 등장했습니다. 커뮤니티가 대형화되면서 정치 세력화 되거나 비즈니스화 되는 현상도 가속화되었습니다.

지금은 ‘SNS 시대’라고 명명할 수 있겠습니다. 중요한 포인트는 자유로운 공유와 빠른 확산이 가능해진 모바일 기반입니다. 모바일 기반 SNS 대중화로 인해 개인 의견 개진과 기존 커뮤니티 콘텐츠들의 공유가 상당히 자유로워졌고 확산속도가 배가되었습니다.

 

Q : 다음 ‘아고라’에서 정치적 논쟁이 많이 이루어졌는데, 2012년 대선 당시 토론장들은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에 대한 평가는 무엇인가요?

A : 먼저 온라인 커뮤니티 토론방에서 정치적 논쟁은 PC통신 시절이었던 1992년 12월 19일 14대 대선과정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당시 민자당과 민주당은 김영삼, 김대중 후보를 홍보하기 위해 하이텔에 공개자료실과 토론방을 개설하기도 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 토론방이 정치 특히 대선에 상당히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은 김대중 대통령을 탄생시킨 1997년 12월 19일 15대 대선과정입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PC통신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당시만 해도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 후에는 인터넷 강국 만들기 일환으로 인터넷 인프라 구축에 적극 나서면서 TV와 함께 인터넷이 새로운 정치도구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 김대중 대통령 취임 첫해 1998년 6월 시작한 초고속인터넷서비스는 4년 만에 가입자 1천만명을 넘어서고 언론과 증권, 교육, 금융 등 산업 전반에 걸쳐 인터넷 서비스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각종 포털에는 정치, 사회 문제를 논하는 카페와 토론방들이 생겨났고 이 기반을 바탕으로 노무현 대통령 당선을 비롯해 노무현 대통령 재임과 퇴임 시절 ‘디지털 정치’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2007년 12월 19일 17대 대선에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임기 초반에 광우병 사태를 겪게 됩니다. 당시 다음 아고라가 광우병 이슈의 중심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상대적으로 기계적 중립성에 집착했던 포털 1위인 네이버보다 토론 기능이 강하고 특별한 제약 없이 익명으로 의견 개진이 가능한 다음 아고라의 장점이 발휘되었습니다. 다음 아고라는 이후 ‘이야기’, ‘즐보드’, ‘청원’ 등 다양한 누리꾼 참여 코너가 신설되어 많은 사용자를 확보합니다.

2012년 12월 18대 대선에는 온라인의 여야, 보수진보 할 것 없이 모두 온라인의 영향력을 잘 알고 있던 시점입니다. 당시에는 포털 뉴스, 카페, 다음 아고라, 대형 독립 커뮤니티의 강세 속에 트위터와 페북 중심의 확산 채널이 대중화되고 있었습니다. 기존 대형 커뮤니티와 아고라는 공고했고 국내 대선에 처음 등장한 트위터의 페북의 영향력 강해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SNS는 게시판을 찾고 해당 게시물에 들어가 댓글을 확인하는 형태가 아니라 매번 최신의 글을 보여주는, 기존 카페나 인터넷 게시판과 달리 ‘피드’ 중심으로 이용자의 게시물을 보여주는 방식이었습니다. 따라서 진중하게 대화하고 토론하는 형태보다 기존 게시물을 빠르게 확산시키는데 더 많은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Q : 매 대선 마다 정치관련 토론커뮤니티의 성향은 어떠했나요? 주요 정치토론장이 시기마다 바뀐다고 알고 있는데 2000년대 이후 주요 커뮤니케이션의 변화와 각 커뮤니케이션들이 어떤 성향을 보였는지?

A : 2000년대 이후 첫 대선인 2002년 12월 19일 16대 대선은 김대중 대통령 정부가 집중했던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 기반에서 진행된 첫 번째 대선입니다. 이 16대 대선이 우리나라 대선의 판도를 온라인, 디지털로 바꾼 시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이때의 변화가 지금 온라인 환경의 근간이 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당시 새롭게 등장했던 온라인 정치 토론 커뮤니티 형태는 ① 정치인 팬클럽 형태 커뮤니티, ② 온라인 대안언론 등장, ③ 텍스트 중심에서 이미지와 댓글 중심으로, ④ 논객 중심 정치 칼럼 사이트 등장, 4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① 정치인 팬클럽 형태 커뮤니티 :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세력은 인터넷을 잘 활용하는 20~40대였습니다. 친노, 노사모 주축의 정치인 팬클럽 형태의 커뮤니티가 이때 활발히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온라인 기반의 정치인 팬클럽의 태동기입니다.

② 온라인 대안언론 등장 : 1998년 오픈한 딴지일보가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특히 딴지일보의 ‘B급 정신’은 기성 담론의 비틀기에 그치지 않고 전문가의 영역까지 확대되어 나갑니다. 지금 온라인의 B급 정서가 대중화되기 시작된 시점이 이 시점입니다. PC통신부터 이름을 알렸던 젊은 경제 전문가들이 필명을 내세워 기존 언론에서 접할 수 없는 내용으로 딴지일보에 글을 실었고 온라인 대중들의 적극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습니다. 이때부터 온라인 미디어를 통해 익명의 논객들과 불특정 다수의 독자가 만나는 장이 확장되면서 온라인 커뮤니티와 온라인 미디어가 ‘대안 언론’으로 진화하기 시작합니다.

③ 텍스트 중심에서 이미지와 댓글 중심으로 : 1999년 오픈한 디시인사이드가 이미지 공유 중심의 짤방 문화를 탄생시킵니다. 이때 엄청난 댓글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상대를 비방하고 폄하하며 대화하는 ‘댓글 놀이 문화’가 만들어집니다. 지금 온라인의 놀이문화의 시초라고 볼 수 있습니다.

④ 논객 중심 정치 칼럼 사이트 등장 : 16대 대선의 특징 중 하나가 특정 정당과 후보를 지지하는 논객들이 모인 정치 칼럼 사이트의 등장입니다. 이 정치사이트가 정치 토론과 이슈를 주도했습니다. 대표적으로 당시 친노 진영이라 평가 받는 서프라이즈가 있습니다. 서프라이즈는 2002년 10월 기자출신인 서영석씨와 논객으로 유명했던 김동렬를 비롯해 최기수, 공희준, 민경진, 변희재, 장신기, 최용식 등이 모여 만들어졌으며 대선 당시 온라인 여론을 주도했습니다.

2007년 12월 19일 17대 대선에선 16대 대선의 패배를 거울삼아 보수진영에서도 팬클럽 형태의 커뮤니티가 등장하고 보수를 지지하는 대안언론과 보수를 지지하는 논객 중심의 칼럼 사이트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후 바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여론과 함께 달아오르기 시작한 여론은 나날이 달아올랐고, 춧불집회 현장을 생중계하여 화제가 되었던 ‘아프리카’와 ‘오마이뉴스’가 큰 관심를 얻습니다. 이 중 위에서 설명드렸듯이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서비스하는 아고라가 대표적인 인터넷 토론방으로 떠오르면서 화제의 중심 서게 됩니다. 훗날 이 현상은 이명박 대통령 정부에게 큰 트라우마로 남습니다.

2012년 12월 19일 18대 대선에는 2010년경 디시인사이드에서 파생된 일간베스트(일베) 사이트가 보수 진영의 관심을 받기 시작합니다. 이후 보수 진영을 대표하는 커뮤니티가 됩니다. 본격적으로 1인 미디어인 블로그와 SNS가 대중화되어 대선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시기도 이때입니다.

2017년 5월 9일 19대 대선에선 촛불 정국 상황에서 온라인 적응을 마친 기존 언론과 온라인 대안 언론, 대형 커뮤니티, 온라인 인플루언서, SNS가 토론 커뮤니티 역할을 분담하게 됩니다. 특히 현재까지 SNS 영향력은 더욱 커져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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