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뉘앙스 전쟁

 

“그리고 또한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이런 사건이 벌어진 것은 조폭 안상구가 알 수 없는 조직의 사주를 받은 정치공작과 연관이 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걸어가다 차에 타기 전 멈추면서) “아… 끝에 단어 세 개만 좀 바꿉시다. 어… ‘볼 수 있다’가 아니라 ‘매우 보여진다’ 로”

영화 내부자들의 주인공인 조국일보 주필 이강희가 안상구의 폭로에 대응해 기자들 앞에서 했던 대사입니다. 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야기한 완곡한 표현에서 ‘매우’라는 부사를 포함해 뜻을 분명하게 바꿔 안상구가 했던 폭로는 정치공작이라는 프레임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때 “이것은 정치공작이다”라는 자신의 주장과 단정적인 문장이 아닌 “정치공작으로 매우 보여진다”라는 다소 모호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것은 교과서적인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의 원칙으로 이야기하지 않지만 실제 현장에선 굉장히 신경 써서 고민하는 뉘앙스 (nuance). 어감 (語感) 영역입니다. 때론 완전한 단어와 문장의 정의가 아닌 대중 혹은 특정 타깃에게 주는 어떤 느낌과 맥락에 담긴 서브텍스트(subtext)가 커뮤니케이션 결과를 완전히 다르게 만듭니다. 어쩔 땐 뉘앙스가 아주 디테일하고 치밀한 전략이기도 하고 어쩔 땐 뉘앙스를 고려하지 못해 커뮤니케이션 실수가 되기도 합니다.

번번이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중요하다 이야기하는 것이 핵심 메시지 (key message) 입니다. 해당 이슈에 대해 간결하고도 이해하기 쉽지만 강력하면서 긍정적인 문장을 가장 좋은 핵심 메시지로 꼽습니다.

예를 들어 문재인 대통령이 금년 1월 18일 비대면 신년 기자회견에서 말씀하셨던 “윤석열 총장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 같은 문장입니다. 개인적으론 정치 사회 기업 모든 이슈에서 2021년 상반기 최고의 핵심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간결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고 강력하지만 긍정적인 문장입니다. 추가적인 논란의 여지가 없습니다.

뉘앙스는 좀 다릅니다. 모호하기도 하고 자세히 보면 어색하지만 뭔가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기술하기 애매한 해석되지 않는 긍정적 혹은 부정적 느낌이 있습니다. 다시 내부자들 이강희 주필의 위 대사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가 마지막 수정한 문장 “매우 보여진다”를 보면 남의 행동을 입어서 행하여지는 동작을 나타내는 피동사를 사용해 수동적인 뉘앙스를 줍니다. 그래서 나의 주장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대중들에게 그렇게 보여지고 있다는 느낌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주장에 충분한 논리와 근거가 없지만 나의 주장이 아닌 것처럼 들리니 책임은 면피될 수 있고 객관성 대중성이 담긴 것 같은 느낌으로 청자에게 전달됩니다. 우리 언론들의 문장에서 잘 쓰이는 문장 마무리입니다.

최근 선거 시즌이 시작되니 많은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보입니다. 그 난무하는 커뮤니케이션을 조금만 더 디테일하게 들여다보면 일종의 뉘앙스 전쟁도 수반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뉘앙스를 레토릭 (rhetoric)이라 평가절하하기도 하지만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현장에서는 빨간펜으로 마무리하는 가장 디테일하고 정교한 전략 중 하나입니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기업이나 개인 입장에서 어떤 뉘앙스를 담아 커뮤니케이션할 것인가를 문장 하나하나에 고민해 보시면 더 내밀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에 다가가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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