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前 대통령의 영원한 동지… 이희호 자서전, 동행 : 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 – 이희호

 

우리 근현대사에서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는 인물 중 하나인 김대중 前 대통령의 이야기를 가장 상세히 서술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 이희호 여사. 87세의 나이로 자서전을 출판했다는 소식을 듣고 2008년 12월 마지막 주에 부랴부랴 주문을 했다가 설 하루 전날 짬짬이 정독하였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희호 자서전 동행 : 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
[footnote]1922년 서울에서 6남 2녀 중 넷째로 태어나 이화고녀와 이화여전 문과,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 램버스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미국 스카릿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를 졸업했으며, 미국 노스이스턴대학과 워시본대학, 코럴릿지배티스트대학, 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학 등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한여자청년단, 여성문제연구회, YWCA연합회, 한국여성단체협의회를 비롯해 많은 단체에서 가족법 개정 운동, 축첩 정치인 반대 운동, 혼인신고 하기 등의 여성운동 및 사회운동에 일생을 바쳐 일했다. 특히 여성 문제와 함께 아이들과 노인, 장애인 등 소외된 사람들이 겪는 빈곤과 인권 문제는 항상 그의 관심과 활동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왔다. 이런 노고를 바탕으로 한국 인권을 위한 북미연합 ‘1984년도 인권상’과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이 해의 탁월한 여성상’을 비롯하여 많은 상을 수상했다. 현재 사단법인 ‘사랑의 친구들’ 고문, 사단법인 ‘김대중평화센터’ 고문, 외환은행 ‘나눔 재단’ 이사 등을 맡고 있으며, 『어둠 속에서 빛을 향하여』(1989), 『나의 사랑, 나의 조국』(1992), 『이희호의 내일을 위한 기도』(1998) 등의 책을 펴냈다. [yes24.com 저자 소개][/footnote]이희호 저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1월 / 13,500원

“일본 식민지 청산 작업은 해방 후 민족의 분열과 외세의 개입, 그리고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인해 제대로 수행되지 못했다. ê·¸ 결과로 ‘반공’이 ‘반일’을 우선하게 되었다.” (57 Page 중)

“나는 이승만 박사의 가장 큰 오류가 친일파를 중용해 자신의 취약한 정치 기반을 세운 일이라 생각한다. 그로 인해 신생 대한민국은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지 못해 불의가 득세하는 토양을 만들게 되었다. 친일에 이어 독재 세력에 합세하여 부와 명예를 세습하면서 지급까지 이 사회의 주류로 행세하는 사람들을 나는 숱하게 보았다.” (60 Page 중)

“‘반일’ê³¼ ‘사쿠라’는 일제 식민지의 유산이고, ‘반공’ê³¼ ‘용공’은 동족상잔과 냉전의 유산이었다. 논쟁에서 반일과 반공은 절대적 안전지대였다. 반면 친일과 용공은 치명적 위험 지대다. 토론과 대화 그리고 협상 문화를 고사시킨 험난한 역사의 슬픈 유산이다.” (83 Page 중)

일본 식민지 시대 이후 아직도 질곡의 역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친일 매국노 청산을 할 수 없었던 것” 입니다. 이는 갑자기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인해 ‘반공’이 ‘반일’을 우선하게 되고, 이후 군사 독재 정권의 기획과 이를 간교히 국민들에게 주입시키면서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암적인 존재로 남아 있습니다.

또한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 후 분단의 뼈아픈 유산들은 아직까지도 북한을 이야기하면 빨갱이가 되고 일본과 발전적 접근을 가로 막는 걸림돌이 되어 있습니다. 일전에 “단군에서 김두한까지… 대한민국史 01 – 한홍구 저” 에서도 피력했듯이 좀더 진실에 다가서려는 본인의 자세와 ê·¸ 역사적 이면들 속에 후손들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시키는 일은 ì°¸ 중요한 것 같습니다.

“선거 결과는 박정희 42.6%, 윤보선 41.19%의 득표로 박빙의 승부였다. 박정희 후보는 경상남·북도와 전라남·북도에서 우세했다. 그의 당선은 호남의 압도적인 우세에서 결판난 셈이다. 15만 표 차이의 아슬아슬한 승리였는데 그가 호남에서 더 얻은 표는 무려 35만 표였던 것이다.” (79 Page 중)

1963년 10월 15일에 있었던 제5대 대통령 선거 이야기 입니다. 이 선거는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 사상 가장 접전의 선거였으며 故 박정희 전 대통령이 15만 표 차이로 승리하게 됩니다. 만약 개표 후반에 나온 호남의 박정희 몰표가 없었다면, 이 선거는 故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절대 이길 수 없었던 선거입니다.

보통 지역감정이 박정희 대통령, 혹은 그 이전부터 고착화 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광주민주화 운동 이후 치뤄진 제13대 대통령 선거전에서부터 고질적 폐단으로 정착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모두 이점에 대해서 큰 책임이 있음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부는 한 몸이며, 한 생각이며, 한 느낌이며, 한 행동 속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남편의 일에 관심을 갖고 도우라는 것은 결코 남편 일에 간섭하고 남편을 지배하라는 것이 아니다. (…) 가장 현명한 아내는 남편의 일에 완전한 지식과 자기 능력으로 해결해나갈 수 있도록 암시하고 겸손하게 조언하되 언제나 ê·¸ 최후 결정은 남편이 내리는 형식을 취하도록 해야 한다.” (119 Page 중)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80년, 군사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후 큰며느리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입니다.
여보!~~ 보고 있소?? ^^;

사용자 삽입 이미지

“범죄를 오히려 두둔하고 불의 앞에서 공분이 없는 야당은 이미 죽은 야당이었다.” (141 Page 중)
“ê·¸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진실과 의를 구하는 인간의 용기는 결코 절멸하는 법이 없다는 것이 내가 긴 인생을 살면서 얻은 믿음이다.” (141 Page 중)
“불의에 대한 공분과 저항은 실존과 자존의 증거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ê²°êµ­ 악의 편인 것이다.” (148 Page 중)

지금의 야당과 정치인들이 반드시 새겨 들어야 할 대목인 듯 합니다.

“우리는 결코 박 대통령의 불행한 죽음을 기뻐하지 않았다. 장기 독재와 종식은 환영할 일이었지만 ‘암살’이라는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는 비열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불의가 불의를 단죄할 수 없으며 그것은 정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힘으로, 선거를 통해서 이루어지며 쿠데타나 암살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183 Page 중)

故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 독재는 국민의 손으로 종식시켜야 했습니다. 부마 항쟁으로 촉발된 도도한 역사의 흐름은 더 이상 정권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국민들 앞에 스스로 굴복할 타이밍 이였습니다. 하지만 무심하게도, 참으로 절묘하게 모반이 일어나고 이로 인해 민주화의 흐름이 단절됩니다. 이내 찾아온 짧은 봄 이후 다시 대한민국은 긴 겨울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되죠. 우리는 아직도 국민의 힘으로 역사를 바꾸지 못했습니다.

“‘대화’는 없고 일방적인 ‘통치’만 있었던 시대가 부른 비극이다. 박대통령은 가난의 상징어인 ‘보릿고개’를 이겨내고 ‘보리밥’을 그리운 추억으로 만든 경제개발의 선도자라는 뚜렷한 공을 가지고 있다. 강렬한 빛만큼 그림자 또한 짙어서 독재와 인권유린의 허물을 지니고 있다.” (186 Page 중)

이 대목에서 소인은 이희호 여사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경제개발의 선도자라는 뚜렷한 ê³µ”은 박정희 대통령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 위에 굴림 하며 통치하였던 군사 권력의 일방적인 희생을 감내해 낸 대다수 국민과 저임금과 살인적인 노동강도에도 꿋꿋이 소임을 다해왔던 대다수 노동자들이 가져가야 할 공인 것입니다.

이런 관점이라면 우리 역대 대통령 중 군사 정권하에 모든 대통령들은 경제개발의 선도자 일 수 있습니다. 독재와 인권 유린 위의 경제개발은 민주주의 토양 자체를 훼손 하여 작금의 혼란을 가져오게 한 원인 중 하나이며, 오히려 정상적 이였다면 비약적으로 더 발전할 수 있는 기회마저 박탈하여 지금처럼 다시 역행하게 되는 역사가 되풀이 될 뿐입니다. 또한 경제면 모든 것이 용서될 수 있는 면죄부를 부여하여 제2, 제3의 박정희 유사품만 양산해 낼 뿐입니다.

이는 공이 아니라 많은 의인들의 죽음과 국민들의 피와 땀 위에 세운 오만하고 방만한 바벨탑일 뿐입니다. 이내 민주주의 일부를 되찾고 이 바벨탑이 심판을 받아 무너졌을 때 그 파편을 온 몸으로 고스란히 받으며 고통스러워 했던,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 이들도 바로 국민이기 때문입니다.

“그때가 되거든 먼저 죽어간 나를 위해서든, 또 다른 누구를 위해서든 정치적인 보복이 이 땅에서 다시는 행해지지 않도록 부탁하고 싶습니다.” (215 Page 중)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형 판결 전 1시간 48분에 걸친 최후 진술 중 일부입니다. 이 내용은 문익환 목사님의 막내 아들인 영화배우 문성근氏가 기억을 복원하여 기술하였습니다. 비열한 정치보복은 아직도 서슬 퍼렇게 살아 움직이며 그 기세가 더 높은 것 같습니다.

“우익은 이권으로 뭉치고 좌익은 이념으로 모이지만 동시에 우익은 이권분배의 크기로 분열하고 좌익은 이념을 지나치게 정밀화, 세밀화하는 ‘작음’의 고질적 아집 때문에 망한다는 역사적 경험이다.” (295 Page 중)

리영희 선생의 글을 일부 인용하고 있는데 지금 우리 정치 구도를 보면 무릎을 탁 칠만한 글이고 이후 그림도 어느 정도 예견해 볼 수 있는 통찰입니다.

“이후로 한국인들은 노벨상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스웨덴 한림원이 한국이라면 넌더리를 내고 있다.” (347 Page 중)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기 전, 받은 후 한나라당의 집요한 반대 로비로 인한 스웨덴과 노르웨이 분위기를 교민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 입니다. 노벨상을 두고 근거 없는 네거티브 캠페인을 벌이고, 낙선한 원외위원장들이 수상 저지 원정 시위를 떠나고, 이후 노벨 평화상을 반납하라는 주장까지 펴는 그들을 이 책의 활자로 만나게 된 것은 행운이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 순간 고질적으로 막혀있던 혈액 순환에 지대한 도움을 준 그 당시 한나라당 노벨 평화상 반대에 앞장 섰던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정말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
“세상은 남자가 정복하고 그 남자는 여자가 정복한다.”

이 책을 보면서 대통령이라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87세에도 이런 자서전을 쓸 수 있는 이희호 여사의 필력에도 존경심을 표하며 역시 기록의 중요성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 부부는 [footnote]에큐메니컬 운동(Ecumenical movement, ecumenism; 그리스어 οἰκουμένη 오이쿠메네로부터 유래)은 기독교의 각 교파들이 다양성을 인정하고 교류와 협력을 할 것을 주장하는 운동이다.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간의 일치를 위한 종교개혁자 장 칼뱅의 노력, 루터교회와 로마 가톨릭간의 대화인 라겐스부르크 회의에서 에큐메니컬 운동의 시초를 찾을 수 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교회, 개신교, 성공회에서 세계 교회 협의회(WCC, World Council of Churches)를 결성하면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footnote]에큐메니컬 운동(Ecumenical) 운동의 모범적인 가정입니다. 개신교 모태신앙인 이희호 여사와 천주교에서 세례를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은 결국은 같은 분을 하느님과 하나님으로 지칭했지만, 두분 다 서로를 인정하며 각자의 신앙심을 지켜주고 신앙 원칙을 존중하며 신앙생활을 존경하였던 것 같습니다. 에큐메니컬 운동(Ecumenical) 운동에 긍정적인 저와 부정적인 제 아내와의 거리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데 개인적으로 많이 부러웠던 부분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마치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266 Page 중)

1950년대 영국 언론인이 <타임스>에 보도한 ‘장미꽃과 쓰레기통’ 비유입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을 허용하는 개헌안을 사사오입이라는 해괴한 논리로 통과시킨 우리의 민주주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헌법과 긴급조치, 계속 이어지는 체육관선거, 3당 합당 등등…

이젠 이 쓰레기통을 청소하고 장미꽃을 피워보지 않으시렵니까?

※ 이 글은 총 57회 조회되었습니다.


4 thoughts on “김대중 前 대통령의 영원한 동지… 이희호 자서전, 동행 : 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 – 이희호

  1. 자세하고 충실한 책소개 정말 감사드립니다. 돌아보면 한국 정치사에서 그래도 자기 몫을 해냈다 할 분이 김대중 대통령 밖에 없는 듯 합니다. 흠이야 있겠지만, 공과를 따져보면 그래도 공이 가장 많이 남는 분이라 생각합니다.

    중간에 적으신대로 국민의 힘으로 상황을 역전시키지 못했던 것이 참 아쉽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우리의 힘으로 독립을 성취해내지 못했던 것이 아쉬운 역사의 시작이겠지만요.

    • “거슬러 올라가보면 우리의 힘으로 독립을 성취해내지 못했던 것이 아쉬운 역사의 시작이겠지만요.” 100% 쉐아르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공은 뭐니뭐니해도 햇볕정책으로 대변되는 남북간의 평화구축이라 생각되며 저도 공이 많이 남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포함해서 말이죠…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감사합니다!

  2. 지역문제에 관한 송선생님의 견해에 대해 몇가지만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1963년 선거 막판의 호남표는 도서지방의 표가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표가 막판에 박정희에게 잭팟을 안겨준 셈인데, 새벽까지 라디오를 들으며 개표 상황을 듣던 사람들은 윤보선 승리로 알고 안심하며 잠든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작스레 잭팟이 터진 거지요. 해상수송되던 호남의 도서지방 표가 결과를 뒤바꾼 셈인데요. 그 성격을 다시한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또, 1967년 선거에서 이미 경남북의 박정희 쏠림현상은 확연해 집니다. 호남의 투표 결과는 이전 선거와 판이해지지요. 4년 사이에 그렇게 표변하는 일이 가능한지를 생각해 보신다면(당시는 60년대로 지금보다 정치적 변이의 속도가 아주 더딘 상황이었음을 감안해서), 위의 투표 결과 해석에도 도움이 되겠지만, 지역문제의 발단이 결코 님의 생각처럼 80년대 이후의 일이 아님을 아시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71년 선거에 이르면 경남북의 박정희 쏠림은 아주 일방적이 되는데, 80%가 넘는 압도적인 지지가 쏟아집니다. 반면 호남은 김대중에60%정도만 주지요. 이게 아주 치명적인 실수가 되긴 했지만, 호남의 지역적 각성이 이때만 해도 뚜렷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되겠습니다. 정치의 지역적 분열의 역사적 전개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실 겁니다. 63년 선거부터 영남은 기조적으로 지역적 투표의 도를 심화시켜 갔고, 71년에 이르러서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는 사실을 아셨으면 좋겠네요.

    호남대 영남의 인구비가 박정희 등장 시기만 해도 9:10이었습니다. 그런데 박정희 말기에 가면 1:2수준 이상으로 벌어지고, 지금에 와서는 거의 1:3정도가 되어 갑니다. 지난 50년동안 얼마나 극심한 호남지역 차별이 벌어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지요.

    지역문제는 단순한 감정의 차원이 아닙니다. 이처럼 뚜렷한 경제적 실체가 있는 한국정치의 본질적 문제인데, 영남의 패권적으로 정치경제적 독점권을 유지하려고 하고, 호남은 잃어버린 균형을 찾으려는 시도를 하는 과정에서 현상적으로 나타난것이고, 단순히 일부 정치인들의 수사처럼 ‘감정의 문제’나 80년 광주의 상흔에 의한 트라우마적 발현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문제의 책임은 박정희에게 90%이상 귀착되는 겁니다. 노골적인 경부축선 개발과 호남소개정책의 부산물이지요. 80년 광주는 이런 분열의 기조에 불을 끼얹은 효과를 발휘한 것일 뿐이고, 본질이나 발단은 아닙니다. 또한 김영삼과 김대중에게 지역분열의 책임이 크게 돌아가지는 않는다는 근거도 되겠습니다. 87년 선거로 인해 악화된 측면은 분명 존재하고 이를 부채질한 책임 정도는 이들도 함께 져야 하겠지만, 이또한 부차적이라는 말씀이지요.

    생각해 보십시오. 9:10->1:3 이라는 인구비 격차를 말입니다. 평균소득지표등을 더해서 고려하면 이 격차는 훨씬 끔찍해 집니다. 이런 극단적인 변동에 정치적 반응이 나타나지 않기를 기대하는 것은 정치도 경제도 모르는 사람들이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본질을 숨기고 싶어하는 이들 말고는 없지 않을까요?

    • wiseresearch님! 우선 댓글이 스팸 필터링에 걸려 휴지통에 있어 다시 복구하였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알고 있던 것에 오류를 상세히 짚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1963년 선거의 결과만으로 판단한 후 바로 1980년대로 넘어와서 결론을 내려버리는 중대한 실수를 한 듯 합니다. 좋은 지적 감사드립니다. wiseresearch 블로그에 방문하려 했으나 링크가 없어 부득히 여기 댓글로만 남깁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