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모두가 갈망하는 행복 추구에는 정답이 없다.

 

대기업에서 갑자기 사표를 던지고 온라인에 다짐을 하는 젊은 직원, 갑자기 유럽 여행 혹은 세계 일주를 떠나겠다며 온라인에 공표를 하는 사람들, 이렇게 가는 길이 과연 내가 가야할 길이 맞는지 고민해 보겠다며 학교나 직장을 그만두는 동료들…

대부분 공통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이다.
행복해지고 싶어요. 행복해지고 싶어요. 행복해지고 싶어요…

이때 이야기 하는 ‘행복’이라는 정의는 대부분 우리나라 헌법 제10조에서 이야기하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에서의 ‘행복’이란 개념처럼 때론 사상적이고 추상적이다.

이처럼 ‘행복’이란 가치와 만족감이 사람마다 다를 수 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행복해지는 방법 또한 다양할 수 밖에 없고 그래서 행복해지는 방법에 정답이 없다. 또한 세상에 항상 행복한 사람은 없기에 그것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도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행복하다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방법을 보고 행복을 찾는 방법을 취사 선택하게 되는데 또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미디어를 통해 다소 포장된 상대적 독특함만 쫓게되고 그 결과 ‘상대적 일탈’ 행위가 행복을 찾아가는 하나의 관문으로 간주되는 듯 하다.

특히 사회적 행복의 기준에는 일반적으로 ‘사회적 성공’이라는 개념이 행복을 위한 기본적 개념으로 자리잡고 인정받고 있기에 때론 행복과 유사 개념으로 통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많은 성공은 경제적 성공을 하위에 두고 사회적 성공을 논하기에 이 또한 ‘개념적 차별화’ 또는 ‘개념적 일탈’을 꿈꾸는 진정한 행복론을 고민하고 설파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돈을 추구하는 듯한 이 경제적 행복을 부정하거나 하위에 두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면 ‘행복’이란 가치와 만족감이 사람마다 다를 수 밖에 없고 그렇게 때문에 행복해지는 방법 또한 다양할 수 밖에 없고 그래서 행복해지는 방법에 정답이 없다. 다양성의 사회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나의 상대적 일탈 행위나 남들과 다른 생각도 존중받아야 하지만 반대로 상대적으로 평범하게 대기업을 비롯한 직장생활을 하고 평범하게 결혼생활하고 평범하게 공부하고 살아가고 돈을 많이 벌고 성공하고 싶어하는 사람들 또한 행복을 추구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아니, 독특하진 않지만 더 행복에 목마른 사람들일 수도 있다.

분명히 행복해지기 위해 늦었지만 다시 ‘자아’를 찾아가고 그 속에서 해답을 찾으려는 치열한 노력을 일탈 행위에서 찾을 수 있고 그것을 존중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그런 일탈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폄하하지는 말자. 평범하다고 생각되는 그들에게도 그들이 추구하는 방식의 행복추구가 그 자아에겐 맞는 방법일 수 있다. 그리고 솔직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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