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어의 홍수… 진화인가? 비즈니스인가?

 

프로그램이나 문서를 만들다 보면 습관적으로 버전(version)을 붙인다. 데모 버전이나 베타테스트 단계에서 붙는 v0.5, v0.95 식의 숫자는 프로그램이 완성되면 비로소 v1.0가 된다. 이후 새로운 업데이트가 되면 v1.1 형태로 버전 숫자가 증가하다 완전 새로운 형태로 업그레이드 되면 다시 v2.0 형태의 버전이 붙는다. 즉 버전은 v1.0이 만들어 질 때부터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염두한 숫자이며 애초에 진화와 발전을 의미하고 있다.

 

‘웹(web) 2.0’, 웹이 등장한 후 1990년대 초 웹 2.0이란 신조어가 나왔으니 시나브로 30년이 되어 간다. 이 ‘웹 2.0’이란 키워드는 ‘OOO 2.0’ 이란 신조어의 시발점이다. 그런데 이렇게 붙는 2.0의 숫자는 서두에서 이야기 한 버전의 개념과 사뭇 다르다. 버전은 애초에 숫자의 증가를 염두해서 만들어 진 진화와 발전의 개념이라면 웹 2.0의 개념은 이전 과거를 웹 1.0라고 강제로 규정한 후 2.0을 새로운 시대로 명명하는 ‘구분’의 의미가 강하다. 1.0이 있고 2.0이 있는 것이 아니라 2.0을 만드니 비로소 1.0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즉 과거와 현재, 미래를 구분짓기 위한 목적이다.

해당 신조어로 졸지에 과거가 되버린 세상이 생기고 누군가의 지대(地帶)와 주장, 지향점은 미래가 된다. 이렇게 ‘2.0’이란 키워드는 구분과 미래지향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후 미디어 2.0, 마케팅 2.0, 교육 2.0, 경영 2.0 등 각 분야마다 2.0을 붙이는 것이 트렌드가 됐고 4차 산업혁명 등 거대한 쓰나미 같은 신조어들도 생겨났다.

 

이런 조어(造語)들이 기술의 발전과 진화를 전혀 담보하고 있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초 웹 2.0 처럼 정보 참여·공유·개방이라는 가치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신기술을 수용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어떤 ‘정신’과 ‘철학’을 말하는 개념이 아니라 갈수록 비즈니스 용어에 가깝게 만들어져 활용되고 있다. 웹 2.0 또한 2000대 초반 IT붐과 벤쳐 붐이 꺼진 후 실패한 과거와 구분 짓기 위한 비즈니스 용어로 활용되기도 했다. 이제 숫자를 붙이는 방식이 식상하니 과거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개념에다 그럴 듯한 영어 조합으로 만들어진 신조어도 등장하고 있다.

이 신조어가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내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과 진화를 가져온 주역들이 이 신조어의 과실을 얻는게 아니다. 아직 무르익지도 않은 설익은 모델을 가지고 뭔가 빠르게 변화하는 것처럼 혼란을 주고 호도해서 아주 뭔 훗날에 얻을 수 있는 이득을 미리 빼먹는 가불 형태의 비즈니스와 시장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이 현상이 가속화 되면 실체를 숨기기 위해 계속 과장하고 포장을 해야 하거나 아니면 어느 순간 실체가 드러나게 되면 만들어진 시장은 극속도로 꺼질 수 밖에 없다. 이때 피해는 신조어들이 과거 영역이라 구분해 버린 시장이 가져간다.

 

웹 7.0이 나오고 미디어 10.0이 나오고 제18차 산업혁명이 나올 때까지 내가 살수 있을지 모르겠다. 개개인이 신조어가 이야기하는 흐름에 대해 구분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그 흐름에 대한 좀 더 정확한 ‘본질’에 집중해야 할 때다. 또한 그것을 위해 전문가들이 현실과 흐름을 정확하게 집어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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